이미나 작가님, 이번 전시 <그림탐험 신비의 세계>에서 선보이는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지난 전시 <그림의 낮과 밤>에는 도형같은 형태로 그림을 꾸려나가는데 흥미를 느꼈다면 이번 그림들은 유기적인 것이 뭘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렸어요. 사전적인 정의는 ‘생물체처럼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각 부분이 서로 밀접하게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떼어 낼 수 없는 것.’ 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시각적으로 꿈틀거리고 곡선의 형태를 띄는 게 유기적이라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동물의 움추린 등, 뻗어나가는 다리, 그들끼리 얽히고 꼬인 자세 이런 걸 많이 그렸고요. 동물 여러마리가 있는 그림들은 그들끼리의 관계를 상상하면서 그렸어요. 서로 보호해주는 동물, 나누는 애정, 미세하게 이어진 감정 그런 것들이요. 그리고 각각의 그림들은 다 다른 이야기지만 크게 보면 모두 계절의 작은 에피소드들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작년 이맘때 운좋게 작업실을 큰 곳으로 옮겼어요. 처음에는 너무 좋았는데 겨울이 되니까 실내 온도가 9-10도까지 떨어지더라고요. 너무 추워지니까 감정적으로 가라앉고 서러워져서 방법을 찾다가 책상이 들어가는 큰 텐트를 발견했어요. 텐트 안에 난로를 트니까 생각보다 훈훈했어요. 형광등을 달고 그 안에서 그림을 그렸어요. 추워서 그랬는지 난색으로 그림을 그렸고요.대부분 겨울에 그린 그림들이고 유화를 많이 썼어요. 저는 유화가 겨울과 어울리는 재료라는 생각을 해요. 그 질감이 꼭 크림처럼 보여서 겨울에 먹는 크림빵같은게 떠오르거든요. 유화도 연료도 모두 기름을 쓴다는 공통점이 있고요..물감을 꾸덕하게 캔버스에 덧입히는 게 감정의 온도가 올라가는 기분이 들어서 내내 유화로 그렸어요. 계절이 바뀌고 텐트에서 나오고는 더 가벼운 재료를 찾으면서 골판지에 먹과 잉크로 그려보기도 했어요. 이번 전시 <그림탐험 신비의 세계>에서도 주제나 대상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어요. 동물을 그렸어요. 저는 여전히 동물이 응시하는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그 안에서 변주해가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변주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건 제 일상에서 발견하는 시각적인 것들, 대화, 공상이에요. 예를 들면 겨울에 역 앞에 나갈 일이 있어서 수족관을 지나가는데, 물고기들이 푸른 어항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거에요. 그리고 우연히 다음날 친구와 얘기하는데 해수어 영상에 대한 주제가 나오고요. 또 다른 친구의 sns를 보니까 버섯사진을 자꾸 올리는 거에요. 그런데 슈퍼에서 보던 버섯이 아니라 이상하고 귀여운 버섯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다니 감탄하고요. 그런 것들이 몇번 반복되면 아 물고기를 한번 그려볼까? 버섯을 그려볼까? 하고 자료를 찾아요. 물고기를 찾으니까 바다 풍경이 너무 근사한 거예요. 버섯을 보니까 우리집 강아지의 미용한 머리통이랑 비슷하고요. 여기에 제가 좋아하는 동물의 모습을 더해서 이리 저리 스케치를 해요. 마음에 들면 페인팅으로 발전시키고요. 순간 순간 일상에서 얻은 것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며 그림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 좋았던 순간들과 에피소드가 작업에 반영되는군요. 골든핸즈프렌즈가 작가님의 작업을 처음 접했을 때가 2019년 봄이었어요. 지나온 시간만큼 작가님의 작업에도 변화가 보이는데요. 작업실이 커지면서 작업 크기도 커진 것 같고, 화면의 속도와 표현의 차이점도 있고요. 즐겨 쓰시던 잉크와 아크릴 물감에서 유채로, 종이에서 캔버스로 재료의 물성도 달라졌죠. 작업의 변화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싶어요. 변화의 계기는 지루함이었어요. 어느 순간 신나게 쓰던 아크릴이 지루하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아주 예전부터 유화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요. 제가 회화를 전공한 것이 아니어서 유화에 대한 환상이 늘 있었거든요. 아크릴과 비슷한 물성처럼 보이는데 뭐가 다른 걸까 늘 궁금했었어요. 지루함에서 벗어나고 싶던 마음이 점점 커져서 새로운 재료를 찾다가 유화를 탐구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재료는 역시나 혼란스럽고 어려웠지만 제가 공부할 것들이 쏟아졌어요. 그릴 수록 부족함만 보여서 더 써보고 싶어졌고 그런 과정이 모두 그림에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은 솔직해서 제가 숨기고 싶은 어설픔도 은은하게 다 드러내고 있어요. 이번 전시는 작가님과 함께 여는 세번째 개인전이에요. 19년 <고양이과 친구들>, 22년 <그림의 낮과 밤> 그리고 이번 <그림탐험 신비의 세계>. 동물과 식물이 늘 작업의 소재가 되어 왔죠. 동물과 식물같은 생명있는 것들이 작가님에게 주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작가님이 다루는 소재에 관해 이야기해주세요. 처음에는 집이나 공간을 그리는 것이 재밌었어요. 그림책 <터널의 날들>과 <나의 동네> 을 만들 때까지는 동물을 그리는 것에 전혀 흥미가 없었는데 그림책 <나의 동네> 속 오래된 동네를 그리다가 아스팔트나 벽돌을 타고 자라난 식물을 그리게 되었고, 재밌었어요. 나의 동네 책을 그리며 그 속에 살고 있는 동물을 그리게 되었고, 또 재밌었어요. 동물은 정말 많거든요. 식물의 종류도 그렇고요. 지역마다 기후마다 서식지마다 다 다르게 생겼어요. 얘네들을 다 그려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서 동물과 식물을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그리다보니 그들을 더 관찰하게 되고 관찰하게 되니까 그들이 얼마나 강인한지, 그러면서 얼마나 연약하고 순식간에 죽어버리기도 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생명있는 것들은 언젠가 죽어버린다는 것이 너무 슬퍼 결국 삶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그들이 살아 움직이는 건 생명과 에너지로 가득 차있어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는 게 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하더라고요. 우주 속에서 저는 그저 작고 소소한 먼지같은 존재여서 그들이 뿜어내는 생의 기운을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리며 순수하게 기뻐하고 좋아하고 그러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요. 제가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그냥 솔직하게 좋아하며 살기도 어려운 세상인 것 같아서… 그런데 이런 생각들은 늘 파도처럼 움직이고 있어서 또 다른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게 될 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보니 작가님 그림에서 느껴지는 순수함은 생명력에서 온 것 같네요. 저는 작가님이 소재를 다루는 방식도 재밌어요. 처음에는 감상자를 쳐다보듯이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동물의 시선에서 강렬함을 느꼈어요. 사람으로서는 다 알 수 없는 야생의 신비, 동물들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도록 했고요. 그들의 세계로 조용히 들어가 포착하는 기분도 주었죠. 두번째 전시에서는 조형에 관한 작가님의 호기심을 실험한 작업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과의 모양을 어디까지 변형해야 사과처럼 보일지 실험한 그림이라던지, 동물과 식물을 도형처럼 보이도록 표현한 것이라던지, 버섯 옆에 버섯을 닮은 강아지라던지요. 그리고 작가님 작업에는 재미있는 의외의 조합들도 보이죠.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림 중 알 대신 강아지를 품고 있는 닭이 그렇고요. 수중에서 물고기를 관찰하고 있는 개도 재미있어요. 이런 표현방식과 발상은 작가님의 세계관이 엿보이는 대목이 아닐까 싶어요. 한 화면에 담기는 동물과 식물의 조합, 그들의 표정과 숨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장면 등 소재와 방식에 영감을 주는 혹은 작가님의 세계관을 이루게 한 것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져요. 세계관이라고 하니 어쩐지 근사한 이야기를 해야할 것 같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일상에서 얻는 것도 있고, 아주 소소한 아이디어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자기 전에 공책에 휘갈기듯 스케치를 하는데요. 그 때 그림 속 동물들이 어떤 생각을 할까 상상하며 그려요. 결국 이야기의 시작은 제 감정인 것 같아요. 제가 무감하게 느낀 것들은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고, 단순하게는 기쁘거나 슬픈 것이지만 그 안에도 다양한 갈래의 감정들이 있어서 웃기지만 안쓰럽고, 사랑스럽지만 어쩐지 싫고, 근사하지만 두렵고, 대견하지만 걱정스러운. 이런 감정들이 그림의 시작이 돼요. 아니면 오직 찬사나 감탄만을 보내고 싶은 대상을 그리기도 해요. 길가 아스팔트에서 무성하게 핀 나리꽃은 아무 말도 안하고 어떤 표정도 없지만 그걸 보는 제 마음은 그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시간과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는 식물의 의지, 에너지를 상상하고 탄복하는 것으로 가득차서 그리고 싶은 마음이 피어나기도 해요. 그리고 귀여운 것들도, 그리고 싶은 마음을 훅 불러오는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는 개가 많이 등장하네요 :) 개의 등장에 대해서도 궁금합니다. 검은 개 한마리를 키워요. 얘가 성질머리가 보통이 아니어서 어렸을 때는 제가 목욕을 시키거나 뒷다리를 만지거나 자는데 건드리면 크아앙 이러면서 저를 물려고 했거든요. 여러번 물리기도 했어요. 개한테 물리는 경험은 진짜 불쾌해요. 꼭 제 손가락이 고깃덩어리가 된 것 처럼 물거든요. 개에게 이성이 있는 건가 싶지만, 분노가 조절안되는 개의 감정이 고스란히 치악력에서 드러나요. 상처에서는 피가 철철 났어요. 그것도 참은 건가 싶다가도 화가 나는 거에요. 손이 퉁퉁 붓고 아프고 며칠을 고생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그 개를 너무 좋아하지만 가끔 너무 싫기도 했고. 사람보다 짧은 수명이 생각나면 마음이 아프고. 그런 마음들이 같은 자리에 있는 게 불편했어요. 이런 마음 때문인지 개를 그리고 싶지 않았어요. 고양이를 그리기 시작할 때도 이런 비슷한 마음이었지만 고양이 미미는 저를 물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오히려 그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우리 개가 좋기도 싫기도 하고, 그런데 얘는 언젠가 죽을테고, 그런 걸 상상하니 너무 괴롭고 슬프다가 어느 날 얘가 어느새 늙어버린 게 보이는 거예요. 약해져서 그런가 예전보다 저에게 덜 화를 내고 저도 이제 경험치가 차서 개의 기분에 따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도 알게 되면서 좀 더 서로를 알게 되었다고 느꼈어요. 그러니까 그런 슬픔이 옅어졌어요. 그 뒤로 개를 그리고 싶어져서 개를 그렸어요. 개를 매일 보니까, 몸의 구조나 기분도 더 잘 알아서 그리는 게 더 재밌고 더 그리고 싶어졌어요. 이번에 소개하는 작가님 작업들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감상자들에게 이번 작업을 즐기는 팁을 주신다면요? 그림 하나를 다 그리고 나서 어떤 그림은 보면서 히히 웃었어요. 색깔과 조형이 어우러져서 마음에 쏙 들게 명쾌하게 그려진 그림에도 웃었지만, 그림 속 애들의 표정이 터무니없거나 엉뚱하면 웃겼어요. 그림을 보면서 터무니없다, 아니면 어이없다고 느끼는 부분들을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그리고 그림의 색깔들이 어떤 온도로 느껴지는지 상상하며 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물감이 올라간 질감이나 발리는 속도는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하는 것도 재밌을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골든핸즈프렌즈는 일상에 기쁨이 되고 특별하게 하는 작업과 작가를 소개하고 있는데요. 반복되는 일상과 작업이 무료해지지 않게 하는 작가님만의 일상 환기법을 나누어 주세요. 기분을 바꿔 주는 음악이나 소울푸드, 가라앉은 마음을 끌어 올려주는 무엇이 있다면 모두 공유해 주셔도 좋습니다. 기분이 가라앉는다고 느낄 때 무조건 혼자 많이 걸어요. 그 순간 제일 먹고 싶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한참을 걷다보면 소화가 되고 피로가 몰려와서 씻고 자리에 누우면 감정에 매몰되기 전에 잠이 쏟아지더라고요. 다음날 일어나도 똑같은 기분이면 반복하고요. 그런데 며칠 연속으로 그렇게 걸으면 분명히 무릎이나 발목이 아파요. 그러면 감정보다 통증과 현실이 마음에 환기를 주고 벗어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하나는 무조건 일상의 루틴을 지키는 거에요. 울적하다고 더 자거나 늦게 잠들지 말고 밥도 대충 먹지 말고 오히려 평소보다 열심히 일상을 채워나가면, 하루도 잘 보냈다 싶어서 기분이 나아지기도 했어요. 또 하나는 시리즈로 나와있는 드라마같은 걸 하루종일 보는 거에요. 내내 그것만 보고, 배고프면 밥먹고 졸리면 자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몰두하다보면 감정도 같이 단순해지거나 비워져서 다시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게 환기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세개 다 집순이 완전체같은 환기법이라 민망하네요. 이미나 작가가 진행한 골든핸즈프렌즈 인터뷰가 이어집니다 > 2023. 9 GH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