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거미와 검은 거미, 2022.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늘 건조해서 건조라고 불리는 건조입니다. 본명은 조은정입니다. 죽을 때까지 그림 그려서 월세 내는 게 꿈입니다. 요즘 태국 ‘빠이’라는 곳에서 지내시죠? 저는 작가님을 통해서 빠이라는 지역을 알게 됐어요. 빠이를 표현하기를 ‘여행자들의 무덤’ 이라고 해서 험한 곳인 줄 알았는데 그 반대였더라고요. 빠이가 너무 좋아서 가서 돌아 오지 않는다는 의미였죠.빠이에서 지내 보시니 어떠세요. 작가님이 빠이에서 지내시는 이유나 계기가 궁금합니다.저는 한국에서 부모님과 살고 있었어요. 저희 집에 방 하나를 작업실로 썼고요. ‘언제까지나 그럴 순 없겠다, 독립을 해야지’ 싶어서 집을 알아보는데, 적당한 수도권에 제가 살 원룸과 작업실을 모두 구하기에는 답이 안 나왔어요. 웬만한 회사원보다 더 일을 많이 해야겠더라고요.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에라이 여행이나 가자!’하고 태국 치앙마이에 한 달 살기를 하러 갔어요. 여행 막바지에2박 3일 일정으로 별생각 없이 빠이에 갔다가, 좋은 사람과 소박한 자연, 특유의 분위기를 만나고는 남은 여행 일정 일주일을 다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죠. 빠이에서 살아볼까 어쩔까 하고 고민하면서 인천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셔틀트레인을 타고 공항에 도착했는데, 셔틀트레인 자동문이 열리자마자 사람들이 모두 자기가 먼저 가겠다며 우르르르 에스컬레이터로 뛰어가는 거예요. 그걸 보는 순간 답이 나왔죠. 떠나자! 자연과 좋은 친구들, 아주 만족스러운 인구밀도의 빠이에서 저렴한 월세로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빠이에서의 생활이 궁금합니다. 보통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나요?‘빠이에 오면 삶이 단순해진다’고 여기 살고 있는 모두가 말해요. 이 시골에서는 할 게 없어요. 저는 일어나서 아점을 먹고, 일을 하다가 (반백수이자 디지털 노마드) 공상을 하기도 하고, 매일은 아니지만 그림을 그려요. 저녁에 시내의 바에 앉아 있으면 사람들이 모이고 수다가 시작돼요. 걸어서 20분이면 빠이 번화가를 다 둘러볼 정도로 마을이 작아요. 그래서 지나가는 지인들에게 인사하기 바쁩니다. 정말이지 다양한 장기/단기 여행자들도 많이 만나고요. 매일 똑같은 듯 다른 것을 봅니다. 빠이에서의 생활은 한국에서의 생활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합니다. 내면과 외면의 변화도 궁금하네요.사실 내면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는 잘 못 느꼈어요. 매일 조금씩 바뀌는 것일 테니까요. 한국에서 알던 분을 빠이에서 우연히 보게 됐는데, 제 모습이 그동안 보던 중 가장 편안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이전까지의 삶에서는 몰랐던 기쁨도 느끼고에, 새로운 과제도 얻고 있습니다. 환경적으로 제일 만족스러운 건 ‘대중교통, 지옥철 탈 일이 없다’것이에요. 제가 수도권에 살면서 가장 힘든 부분이었는데, 빠이에서는 오토바이 타고 10분이면 웬만한 곳에 다 가요. 그리고 불안함, 조급함의 감정이 꽤 줄은 것 같아요. 비자 때문에 항상 불안한 여행자 신세이지만, 한국 사회에 비해 비교할 대상이 줄어서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높은 건물이 없어서 언제든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좋습니다. 마을이 작다 보니 갤러리가 거의 없는 것은 좀 아쉬워요. 그리고 여기는 ‘골goal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지금에 만족하며 사는 거죠.(속내는 알 수 없지만요) 그것들이 전염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편안한 것은 좋지만 뭐랄까.. 어떤 열정은 잃지 말자고 가끔 저를 다잡습니다. 한국에서는 ‘튜브 탄 사람들’, ‘컵 밖의 물’ 등 시리즈를 작업하셨어요. 물을 배경으로 하고, 튜브나 컵 같이 어떤 상태를 유지하는 순기능과 반대로 그 안에 갇혀 제한된 상태를 보여주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 ‘틀’ 같은 장치가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당시의 작가님과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요?‘자유를 옭아매는 것은 사회일까, 개인의 고정관념일까?’ 언제나 답을 모르겠는 질문이에요. 저는 살면서 딱히 크게 억압받으며 산 적은 없어요. 이해심 많은 부모님 덕에 오히려 남들보다 자유로운 편이었죠. 하지만 뭔지 모를 답답하고 쪼이는 느낌은 있었어요. 이걸 털어 버려야 자유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했고요. 그 답답함은 원치 않는 방향의 반복적인 삶일 수도 있고(대표적으로 수익만을 위한 회사 생활 이랄지), 안전과 안정을 위한다는 명목하의 울타리일 수도 있고요,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를 가두는 스스로 만든 틀일 수도 있지요.그 틀은 제가 스스로 만든 것임과 동시에, 이 시대, 이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다분히 느낄 수밖에 없게 설계된 것 같기도 했어요.그 틀이 뭔지 아직도 정확히 문장으로 말하긴 힘드네요. 모두에게 거기에서 빠져나오세요! 라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그 틀이 주는 안정감을 원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나름의 인생과 철학이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틀에서 나오고 싶었어요. 빠이에 지내시며, 요즘은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거주 환경의 변화가 작업에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을까요?요즘은 큰 생각 없이 작업을 할 때도 많은데요, 주로 새를 그리게 됩니다. 큰 이유는 없고 그냥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건데, 자유의 상징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자유를 외치지만 이 상징 역시 외부에서 입력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빠이에는 한국에서 못 본 새들이 많긴 해요. 여기서는 캔버스 등 질 좋은 미술 도구를 구하기 어렵고, 이동의 편리성을 위해 주로 종이에 그리고 있어요. 태국 비자 90일을 초기화하기 위해 다른 나라에 다녀오는 짧은 여행을 할 때는 정말 간단하게 들고 다녀요. 그래서 재료의 한계가 많습니다! 분명 단점도 있고 재료에서 나오는 표현의 한계도 있지만, 그만큼 그림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만큼 큰 작업들을 못 하고 있는데, 음 사실요 이건 어떻게든 하려면 할 수 있겠네요. 곧 해보겠습니다. 하하. 그리고 빠이는 정말 다양한 여행자들이 오고 가서 새로운 생각들을 들을 일이 많아요. 이건 저의 개인적, 작업적 철학에 대해 생각해 보는 데 좋은 역할을 해요. ‘자유’라는 키워드는 작가님의 작업에서 보이는 공통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에게 ‘자유’란 어떤 부분인가요?딱히 자유롭지 못한 것도 아니면서도 자유를 항상 바라게 되네요. 원하는 것을 하지 못(안) 한다고 자유롭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핑계가 붙는 순간 자유와 멀어지는 것 같아요. 제게 자유는 '나 자신에게 당당할 때 성립'하는 것 같아요. 내려놓고 다스릴수록 자유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한지 8-9년이 되었고, 꾸준히 작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작가님은 미술교육을 이수하거나 단체 등에 소속되어 활동을 하지 않으셨어요. 피드백이라던지, 기술적인 부분, 네트워킹 등 작가 활동에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럴 때는 어떻게 해소해 왔는지,작가님의 지금까지의 삶에서 작업이 차지하는 부분이나 의미 같은 것들이 궁금합니다.처음에는 뭘 그릴지 몰라서 여행하며 찍었던 사진을 보며 주구장창 그렸어요. 계속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어떤 것들로 주제가 이동했고요. 사실 피드백이나 남의 작업에는 큰 관심이 없던 터라 갈증은 없었어요. 기술적인 것이 궁금하면 유튜브를 봤어요. 뭐든 다 나오니까요. 그래도 공유 작업실에 다니면서 작가들도 만나고, ‘서로 프로젝트’에서 다양한 과제와 발표도 해보고요. 예술 관련 서적이나 유튜브 찾아보며 공부했어요. ‘일주일에 하나는 그리자’라는 마음으로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고, 아직까지 큰 이탈 없이 실천하고 있습니다. 작업량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그릴 것이 떠오르지 않으면 그냥 아무 종이에 스케치를 막 해요. 손을 놀리다 보면 떠오릅니다. 저는 작가 생활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행복할까’를 생각하다가, ‘행복은 잘 모르겠고, 일단 재밌는 걸 하자’라고 생각했어요.그림 그리는 게 재밌고, 더 재밌는 게 생기면 그걸 하겠지? 싶지만, 이 이상이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네요. 좋아서 해요. 행복하고요. 가치실현 입니다. 노인이 되어서 그림이 제 월세를 벌어다 준다면 정말 좋겠네요. 하하하 첫 개인전입니다. 어떠세요?비행기에서 제 그림들이 멀쩡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림을 보시는 분들이 제 그림을 잘 감상하고 계시다면 제 캐리어가 무사했기 때문입니다. 첫 개인전에 어떤 기대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전시를 재미있게! 잘 했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한국 친구들도 만나서 그림도 보여주고, 빠이에서 만난 친구들과 다 같이 모일 구실도 만들고요. 사실 부담이 없지는 않습니다! 인터뷰. 골든핸즈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