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와 고양이 홍혜경 작가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골든핸즈프렌즈 친구들에게 작가님 소개를 부탁드려요.안녕하세요. 나이 많은 고양이와 신랑을 돌보면서 그림을 그리고 그림수업도 하며 살고 있는 홍혜경입니다. 골든핸즈프렌즈에서 작가님을 처음 소개한 것은 2022년 ghf 첫번째 소장품전 <Love One Another>에서 였습니다. 그때 작가님의 작품 2점을 소개했는데요. 한 점은 저희 소장품인 <조화를 생각하다>였고,다른 한 점은 또 다른 소장자를 찾기 위해 소개한 <너의 밤을 비춰줄게_너에게>라는 작업으로 캄캄한 밤, 가로등 불빛 아래 고양이 한마리가 앉아 있는 그림이었어요. 당시 그 그림을 MZ 청년이 소장했는데요. 소장 이유를 물어 보니 그 그림이 지금까지 하나님이 자신의 삶을 인도하신 것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소장자는 크리스천이었는데요. 그림의 캄캄한 밤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우리 인생 같아 보였고, 칠흙같은 우리 인생을 하나님은 그림 속 띄엄띄엄 놓인 가로등같이 대낮처럼 모든 길을 환하게 비춰 주지는 않지만, 바로 한걸음 앞만큼 빛을 비추어서 자신이 나아갈 곳을 알게 하셨다고 고백한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의 작가님의 작업들은 동두천을 배경으로 하고 있고 캄캄한 밤이나 흐린 날이 많았던 것 같아요. 주관적이지만 저는 그 밤과 흐린 날씨가 어둡거나 쓸쓸하게 느껴지지는 않았어요. 앞서 얘기한 소장자도 그 그림에서 신의 ‘사랑’을 느꼈고요. 당시의 동두천 작업은 어떤 작업이었나요. 밤이 의미하고 있는 것도 궁금합니다. 말씀하신 그림을 그렸던 시기에 동두천에 살고 있었어요. 동두천은 제 고향이기도 하고요. 고향 얘기를 하자면 할 이야기가 참 많아요.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하기 때문인데요. 간단히 말씀드리면 가장 편안하고 그리운 곳이면서 간절히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했어요. 지금은 부모님께서 귀촌을 하시고 저도 결혼을 하면서 정말로 떠나게 되었지만요.동두천을 처음 떠나 살았던 시기는 고등학교를 다니면서였는데 처음으로 동두천 밖의 세상에서 살면서 동두천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에 대해 알게 됐어요. 대부분이 부정적인 시선이었고 성인이 된 후에 동네 어른들의 말씀으로 내부의 시선도 좋지 않음을 알았어요. 동두천 사람들은 미군부대가 주둔해 있고 그로 인해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로 인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외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살아야 했어요. 한때는 동두천 사람임을 밝히고 싶지 않아 천두동이란 이름을 쓰기도 했다고 해요. 동두천을 거꾸로 읽은 천두동이요. 저의 경험으로도 전해 들은 이야기로도 동두천에 대한 인식은 굉장히 부정적이었어요. 하지만 제 고향이고 당시에는 저와 부모님의 집이기도 해서 그곳에 사는 동안 동두천을 모티브로 한 작업을 많이 구상해 두기도 했고요. 지금은 다른 소재로 작업을 하고 있어 미뤄두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꺼내 펼쳐놓고 싶은 이야기예요.동두천에 살던 그때에는 마차산이라는 산에서 살았는데요. 저녁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겨울이면 가로등 불빛만 보일 정도로 어두웠어요. 산속의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가끔은 세상에 나 혼자뿐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는데 그때 느낀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가로등 불빛 아래 키 작은 풀들과 한 번씩 나타나는 고양이나 고라니, 너구리 같은 동물들이 제 상상력을 키우기도 해서 여러 가지로 작업 구상을 하기도 했고요.‘밤’은 낮과 상대적 의미의 밤이면서 고난과 역경의 의미를 둔 상징적인 의미의 밤을 표현한 것이기도 해요. 빛을 잘 표현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하고요.저는 40년 가까이 무신론자로 살아왔어요. 그러다 어느 날 유신론자가 되었어요. 말이나 글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큰 변화였어요. 그때부터 종교 서적들에 관심을 갖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도 했고요. 절에도 가보고 친구를 따라 교회에도 가보고요. 여행 중에 성당에서 기도도 드려보고요. 그러다 결혼을 했는데 시댁이 독실한 기독교 집안 이어서 명절 때마다 가정예배를 드리게 됐는데 시아버지께서 마음에 와닿는 말씀만 하시는 거예요.그리고 예배를 드리는 동안 마음이 편안해지고 좋았어요. 저에겐 정말 놀라운 경험이었어요. 어릴 때 안 좋은 기억이 생긴 후부터 저는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시부모님께서 그 편견을 아주 자연스럽게 없애주셨어요. 이 이야기를 한 이유는 제 그림 속에서 빛이 상징하는 바가 있어서요. 빛은 곧 신이고 빛 안에 들어가 있는 생명들은 신의 보호를 받는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작가님께서는 주로 밤에 작업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밤 사이 이루어지는 작업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고요하고 차분한 그 시간이 온전히 작가님의 것으로 여겨질 것 같더라고요. 낮보다는 밤이 조금 더 감성적이고 또 감상적일 것도 같았고요. 특히나 작가님의 작업은 대부분 한국화이고, 차곡차곡 붓질을 여러번 쌓아야 하잖아요. 그러는 동안 낮에 있었던 일들이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어떤 것은 정리되고 또 어떤 일은 새롭게 두각을 드러내기도 할 것 같아요. 주로 밤에 작업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작업 시간은 작가님께 어떤 시간인지도 궁금합니다.질문에서 제 마음을 다 표현해 주신 것 같아요. 말씀처럼 고요하고 차분한 시간이에요. 방해받지 않고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거든요. 감성적이고 감상적이 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서 작업의 구상이 대부분 밤에 돼요. 그리고 색을 쌓는 작업을 하면서 명상을 할 때와 비슷한 상태가 되기도 하고요. 같은 동작을 반복해서 수 십, 수 백 번의 붓질을 하다 보면 몰입 상태에 들어가고 물아일체라고 하죠, 그림이 나고 내가 그림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의 일체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어떤 경지에 올랐다고 할 순 없으니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작업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 시간 동안은 그림과 저만 있고 다른 건 생각이 나지도 느껴지지도 않을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몰입에서 벗어나고 나면 여기저기 통증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그리고 작업을 하는 동안은 온전히 저로서 존재하는 느낌이에요. 누구의 아내도, 딸도 아닌 저로 존재하는 시간이에요. 때론 가족의 무게가 너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이름에서 가족과의 연결고리 같은 성과 마지막 글자를 뺀 ‘혜’라는 사인을 쓰게 됐어요. 마지막 글자가 돌림자거든요. 이번에 소개하는 작품에는 장지에 한 번 채색한 후 비단을 띄어 그 위에 한번 더 채색하는 방식으로 레이어를 가진 그림들이 돋보입니다. 이 레이어는 시간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들었어요. 어떤 시간들인가요? 이 작업에 대해서 이야기 듣고 싶어요. 포개어진 여러 시간, 쌓이는 시간에 관한 표현을 두 겹의 레이어를 만들어 표현해 봤어요. 저희 집 정원의 자두나무 가지에 참새가 날아와 앉아 있었는데 직박구리가 날아와 그 자리에 앉는 순간 두 개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였어요. 앞의 이미지에 대한 잔상이 남아 착시가 일어난 것일 수 있지만 이 경험으로 두 개의 겹쳐진 이미지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었어요. 이 구상으로 두 개의 다른 시간, 두 개의 다른 장소를 한 화면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정확히 얘기하자면 두 개의 다른 시간처럼 보이는 같은 시간을 담고 싶었어요. 장소에 대한건 다음 기회에 보여드릴 생각이고요. 우연히 접하게 된 유튜브 물리학 강의가 너무 재미있었는데 동시성과 중첩이란 개념이 흥미로웠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은 절대적인 것 같지만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시간은 불확실하다고 해요. 한 관성계에선 동시에 일어난 듯 보이는 두 개의 사건이 서로 다른 관성계에선 시간의 빠르기가 달라 동시에 일어난 게 아닐 수 있다고 해요. 이를 역으로 생각하면 각기 다른 시간에 일어난 듯 보이는 두 현상이 동시에 일어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이 개념이 참 흥미로워요.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도 만들고요.한국화에서는 장지라는 한지와 비단이 익숙한 재료인데 비단은 비침이 있는 바탕재에요. 그래서 장지에 그린 이미지와 비단에 그린 이미지를 포개놓으면 장지 위에 놓은 비단의 비침으로 두 개의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여요.채색에서도 중첩을 이용하는데 여러 색을 섞어서 사용하지 않고 각각의 색을 차례대로 화면에 발라서 색의 중첩으로 원하는 색을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요. 여러 겹의 색을 쌓으면서 시간을 쌓는다는 생각을 해요. 시간이 작업 소재가 된 것이 궁금합니다. 시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어떤 계기로 시간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2020년 팬데믹을 기점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확연히 늘었고 집에 딸린 작은 정원을 관찰하며 대부부의 시간을 보냈어요. 풀이나 나무, 동물 등 자연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는데 그 시기에 정원을 관찰하며 식물들이 계절마다 어떻게 변화하는지 정원에 찾아오는 새들과 고양이들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유심히 보게 되었고요. 자연을 바라보며 변화를 관찰하다 보니 변화를 만드는 시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도대체 시간은 무엇인 걸까? 궁금증이 깊어졌어요. 그래서 시간에 대해 찾다 보니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시간에 대해, 그리고 신의 영역에 대해 사유하고 공부하게 되었어요. 공부라고 하지만 강연이나 강의를 찾아보는 정도입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작품 중에는 10여년 전에 작업한 그림들도 있는데요. 바다 배경에 사람의 신체 일부가 그려져 있고 그 위에 갈매기가 앉아 있는 그림이에요. 갈매기가 앉아 있는 머리나 발이 꼭 섬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어떤 작업인가요?이 작업을 하던 당시에는 제 자신 이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어요. 시선이 제 내면을 향하고 있었던 시기였고 아주 개인적인 제 이야기를 일기를 쓰듯 그림으로 옮긴 작업이에요. 주로 감정을 기록하듯 그림을 그렸고 자화상으로 얼굴이 아닌 발을 그렸어요. 여러 저의 심리와 성향이 반영되어 발을 그런 거 같아요. 작가님은 예고를 나오셨고, 미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하셨네요. 학창시절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한국화를 선택한 계기도 알고 싶고요.네. 고등학교는 안양예술고등학교를 나왔어요. 유명한 학교지만 미술 쪽은 아니고 연예인이 많은 연극 영화과가 유명한 학교지요. 당시 집은 동두천인데 안양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됐고 기숙사도 없어서 가정집에 방 한 칸을 사용하는 하숙을 3년간 했어요. 다시 생각해도 제 인생을 통틀어 가장 어두웠던 시기였어요. 3년이면 끝나는 상황이었지만 당시에는 끝이 없는 터널을 아주 느린 속도로 걸을 수밖에 없는 느낌이었어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나고 보니 향수병도 혹독히 앓았던 것 같고요. 원래 눈치도 없고, 아무 눈치도 안 보고 걱정도 고민도 없는 뇌가 맑은 느낌의 아이였는데 고등학교를 지나면서 180도 변했죠. 대학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경제적 어려움도 있었고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로 20대를 보낸 거 같아요. 곱씹으니 조금 씁쓸하네요. 그때의 제가 안쓰럽기도 하고요. 한국화는 아주 단순한 계기로 하게 됐어요. 고등학교를 다닐 때 미술학원 선생님과 교생 선생님의 권유였어요. 저를 눈여겨보신 것 같진 않았는데 지나가는 말처럼 하신 느낌이었어요. 잘 맞을 것 같다는. 그래서 선택했고 잘 했다는 생각입니다. 작가님과 저희가 처음 만난 날 기억하세요? 2019년 새해였고, 합정동 어느 갤러리에서 열린 그룹전에 저희와 작가님 부부는 손님으로 초대되어 만났어요. 그 때 저희는 다음달이 결혼이었고, 작가님 부부는 그 다음달이 결혼이셨고요. 한달 차로 결혼식을 올리는 공통의 이슈가 서로 특별한 유대감을 갖게 했어요. 또 저희는 아트딜러 부부고, 작가님네는 작가 부부로 일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점도 같았고요. 작가님은 배우자이신 유신 작가님과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함께 작업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들과 결혼 후 작업에 변화가 있는지 궁금합니다.네. 저도 기억하고 있어요. 먼저는 두 분 인상이 제게는 아주 호감이었고요, 결혼을 앞둔 두 예비부부의 만남이었다는 것도 신기한 우연이라는 생각이었어요. 제 짝인 이유신 작가님과는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고 있어요. 특히 자타가 공인하는 긍정적 에너지의 밝음 자체인 유신 작가님은 제게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의 정신적 지주입니다. 저는 기저에 우울한 감성이 있고 그걸 좀 즐기는 편이어서 간혹 무기력에 빠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유신 작가님의 밝음이 저를 다시 빛으로 나오게 꺼내줍니다. 결혼 후 작업에서 가장 큰 변화는 제가 만드는 화면이 점점 밝아지고 있다는 점일 거예요. 작업시간도 점점 더 늘고 있고요. 전시 제목 <민들레와 고양이>는 나지막하고 나른한 봄의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생명력이 전달되는 제목 같아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최근 몇 년 저희 집 정원에 있는 생명들을 작업의 주요 소재로 하고 있는데 민들레와 길고양이를 보면서 둘에게 같은 감정을 느꼈어요. 약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일 때가 많은 두 생명이 끈질기게 그 숨을 이어가는 게 저에게 감동이면서 또 제가 갖고 있는 저의 경험에 대한 기억과 감정들이 투영되어 다른 소재들보다 마음이 갔어요. 민들레는 어쩌면 가장 많이 발에 밟히는 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길고양이 역시 마찬가지의 처지고요. 하지만 정말 강한 생명력을 갖고 있죠. 둘의 또 다른 공통점은 귀엽다는 것이고요. 저는 귀여운 걸 아주 좋아해요. 제 시선이 머무는 곳은 주로 낮은 곳이에요. 눈높이보다 낮은 곳에 제 시선이 오래 머물고 그곳에 제가 그림으로 옮기는 것들이 있어요. 이런 제 생각을 아울러서 담아낼 수 있는 제목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골든핸즈프렌즈와 개인전으로 호흡을 맞추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전시는 어떤 전시가 되길 바라세요.정말 바라고 기대하고 기다린 전시입니다. 바라는 게 참 많은데요. 우선은 제가 갖고 있는 감사함에 대한 보답이 될 수 있길 바란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되도록 많은 분들과 가슴 따뜻해지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길 바라고요. 앞으로 계속해서 함께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제 그림이 세상의 아주 후미진 구석의 작은 불빛 정도는 되길 희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