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나 작가 노트 <그림의 낮과 밤>

작가 노트 이중적인 것들 사이에서 줄타기한 작업 전반의 시간을 정리했다. (2022. 3. ~ 2022. 9.)


전시 일정이 잡히고 처음에는 밝고 어두운 그림을 구분지어 그렸다. 밝은 그림은 사람들이 좋아할 것 같았고, 어두운 그림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 기간동안 밝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그림만을 그렸는데 속이 답답했다. 이런 마음이 미심쩍었다. 이런 의중을 사장님들과 이야기했다. (나는 골든핸즈프렌즈 대표님 두 분을 사장님이라고 부른다.) 다음에 우리가 또 만났을 때 선영 사장님이 ‘저번에 작가님이 그러셨잖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고. 근데요, 작가님. 그냥 작가님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세요.’ 라고 했다. 차분히 말해주시는 그 순간의 공기가 설렜다. 더불어 속이 시원해졌다. 그 날 이후로 밝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지만 그런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더 수월하게 말 걸 수 있을 거라는 추측은 버렸다.


그림책 작업을 하며 그림을 계속 그렸다. 여러 동물을 그리려고 했는데 이상하게도 고양이와 늑대가 자꾸 등장했다. 그리는 내내 올 초에 죽은 강원도 고양이가 생각났다. 아빠는 강원도에서 펜션을 하며 풍산개와 고양이를 한마리씩 키웠다. 산안개 낀 산 아래서 산신령처럼 앉아있던 고양이. 어디선가 나타난 수탉을 보고도 늘어지게 하품하던 고양이. 내가 본 고양이 중 제일 컸고 제일 의중을 모르겠던 고양이. 여름이면 초록빛에 겨울이면 하얀 눈에 파묻혀 있던 고양이. 고양이를 그리는 내내 그림 속 고양이의 일부분은 그 고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입주변이 하얗고 눈 두덩이 까만 고양이들을 배트맨, 혹은 턱시도라고 부르는데 그림 속 고양이들은 대부분 그 무늬였다. 죽은 고양이의 행복한 시절을 떠올리며 그렸다. 그렇지만 그리는 내내 고양이가 죽어버린 것도 자꾸 생각났다.


고양이 옆의 늑대는 몇 년 전에 죽은 하얀 풍산개를 떠올리며 그렸다. 고양이가 그 개를 참 좋아했다. 아기 때부터 함께 살아 안락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죽은 두 동물들을 떠올리며 늑대와 고양이를 그렸다. 늑대는 그 개를 닮았고, 고양이는 그 고양이를 닮았다. 나는 그들이 살았던 때를 떠올리며 그렸지만 그릴수록 그들이 죽었다는 사실도 자꾸만 떠올랐다. 둘이 재회했을지 아니면 죽고 나서 그냥 모두 사라져버렸는지 궁금했다. 우리가 털을 만지고 동물의 쿰쿰한 냄새를 맡고 서로 바라보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생으로 가득찬 것을 그리면서도 죽은 고양이가 자꾸 떠오르는 것이 이상했다. 늑대는 평소에 그리던 늑대보다 과장된 표정을 지었다. 죽은 개가 생전에 보여줬던 애정과 화와 평온과 늙어가는 고됨을 떠올리며 그렸다. 살아있는 것과 죽음이 너무 가까운 곳에 붙어있었다. 낮과 밤처럼. 평행선처럼 마주보고 이어져 있다. 그리는 내내 다른 것들이 자꾸 상충했다. 그림은 발랄한데 가끔 그리다보면 슬펐다.


올 초부터 그림 속 형태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아졌다. 그 전에는 좋아하는 동물, 식물 등의 소재가 원동력이었는데 어느 순간 도돌이표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재보다 그림 속 형상을 더 단순한 도형의 모양으로 풀어봤다. 동그라미, 네모, 모양과 선이 돋보이게 그려봤다. 그 전에는 소재의 기분을 드러내려 했다면 이번에는 색, 선, 도형같은 조형이 주로 보였으면 했다. 그러다보니 대상이 어떤 기분일지 잘 가늠이 안됐다. 그래서 이렇게도 그리고 저렇게도 그렸다. 한가지 방향으로 그리다보면 다른 것도 하고 싶은 마음이 슬금 고갤 들었다. 한가지로 귀결되지는 않았다.연초에 개인전을 계획하면서 세웠던 원대한 계획은 모두 사라져버렸다. 원래 나는 하나의 결로 통일된 전시를 하고 싶었다. 주제도, 담긴 의미도, 대상도, 표현기법이나 드러낸 방식도. 처음에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 그림을 그렸다가 흥미가 점점 떨어져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다. 한가지 목소리를 내려고 하니 다른 목소리도 따라왔다. 타인의 시선을 생각하니 내가 그리고 싶은 것들이 목소리를 키웠고, 산 동물을 그리며 죽은 동물을 떠올렸다. 소재를 닮게 그리는 표현방식이 지루해져 형태를 도형적으로 그려냈다. 그리다보니 두가지 요소가 번갈아 떠올랐다. 생과 죽음, 타인의 시선과 나의 시선, 다른 표현방식들. 동그란 얼굴의 고양이와 뾰족한 주둥이의 늑대. 모두 변명처럼 느껴진다. 그림으로 이야기한다면 그림에서 끝내면 될 것을. 자꾸 이건 이런 마음으로, 이건 이런 생각으로 그렸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을 보면 아마 이번 전시에 걸 그림들이 처음 계획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는 중에 제멋대로 갈라지는 방향을 한 결로 모으는 것이 어려워 그림의 낮과 밤이라는 제목을 지었다. 나는 그냥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고 싶은 순간에 그릴 때 가장 맑아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사장님이 그랬다. 작가님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세요. 전시는 결국 처음 우리의 의도대로 잘 흘러온 것일까. 이것 저것 재보면서 떠오른 것들을 손에 쥐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결국 다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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